요가(산스크리트어: योग yóga)는 힌두교의 종교적 · 영적 수행 방법의 하나다. 산스크리트어 요가(Yóga)의 뜻은 다양한데 제어(Control)/합일(Union)/수단(Means)/방편(Means) 등의 의미가 있다. 힌두교에서는 "요가란 실천 생활 철학에 철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 하나인 요가 학파의 주요 경전인 《요가 수트라》의 제일 첫머리(정확히는 두 번째 구절)에서는 요가를 "마음의 작용(心作用 · Citta-Vṛtti)의 지멸(止滅 · Nirodha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가는 또한 인도에서 발생한 여러 종교의 믿음과 수행과도 관련이 있다. 인도 밖에서 요가는 흔히 하타 요가의 아사나 수행(자세 취하기)이나 운동의 한 형태로 알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는 요가가 크게 유행했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 《하타 요가 프라디피카》, 《시바 삼히타》 등의 힌두교 경전은 요가의 여러 측면을 기술하고 있다.
요가의 주요 분류로는 하타 요가/카르마 요가/즈나나 요가/박티 요가/라자 요가 등이 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카르마 요가/즈나나 요가/박티 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티 요가에 대한 최고의 힌두교 경전은 《바가바드 기타》와 《바가바타 푸라나》인데, 둘을 비교하면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박티가 보다 이론적으로 다루어져 있는 반면,《바가바타 푸라나》에서는 박티가 보다 실천적으로 다루어져 있다. 라자 요가는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 의해 확립되었다. 파탄잘리에 의해 성립된 요가 학파는 《요가 수트라》를 주요 경전으로 하고 라자 요가를 수행법으로 한다.
역사 : 인더스 계곡의 봉인
인더스 문명(기원전 약 3300-1700년)의 유적지에서 여러 봉인들은 사람이 요가나 명상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고고학자 그레고리 포셀은 "요가의 시초가 되는 제의적인 운동의 형태"라고 보며, 이에 대한 증거가 모이고 있다. 그는 후기 하라파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16개의 요기 조각에 대해 "제의적인 수양과 집중"이라고 말한다. 이 형상은 요가 자세로 "신들과 인간 모두가 행했던" 것이라고 본다.
이중 가장 잘 알려진 형태는 파슈파티 봉인(Paśupati 封印)으로, 발견자인 존 마샬은 이것이 시바의 원형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의 많은 고고학 권위자들은 이 파슈파티(Paśupati: 동물의 왕)[13]가 시바나 루드라를 나타낸다고 본다. 갤빈 플러드는 이것이 피상적인 결론이라고 말하면서, 파슈파티 봉인이 요가 자세로 앉아 있는 시바나 루드라 또는 요기의 형상인지 그냥 사람의 형상인지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요가 학파 개요
요가 학파(Yoga學派) 또는 요가파(Yoga派)는 요가 수행에 의해 모크샤(해탈)에 도달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파로,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 하나이다. 요가 학파의 근본 경전은 《요가 수트라》로, 힌두교 전통에 따르면 파탄잘리가 그 편찬자이다.그러나 《요가 수트라》가 현재와 같은 형태로 편찬된 것은 기원후 400∼450년경인 것으로 여겨진다.
요가 학파의 철학에는 불교의 영향이 있다는 것도 인정되지만, 요가 학파의 철학은 삼키아 학파의 철학과 거의 동일하다. 철학면에서 삼키아 학파와의 상이점으로는, 요가 학파에서는 절대자로서의 최고신을 인정한다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요가 학파에서는 일상생활의 상대적인 동요를 초월한 곳에 절대 고요(絶對靜)의 신비적인 경지인 사마디(삼매)의 상태가 있으며, 이 사마디의 경지에 도달할 때 요가, 즉 절대자와의 합일이 실현된다고 생각하였다. 요가 학파에서는 이와 같은 수행을 요가라고 부르고, 그 수행을 행하는 사람을 요기(Yogi) 또는 요가행자(Yoga行者)라고 이르며 그 완성자를 무니(牟尼 · 聖者)라고 일컫는다. 이와 같은 사마디라는 신비적 경지는 다른 여러 힌두 학파의 해탈의 경지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 힌두 학파들이 모두 요가의 수행을 실천법으로써 사용하고 있다.
라자 요가
요가 학파에 따르면 "요가"라는 낱말의 의미는 "마음의 통일을 이루는 것"으로 요가는 "마음의 작용(心作用 · 심작용)의 지멸(止滅)"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따라서 외부적인 속박을 떠남과 동시에 내부적인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삼키아 학파와 요가 학파의 철학에 따르면, 마음의 작용(心作用 · 심작용)이란 푸루샤(神我 · Cosmic Spirit)가 프라크리티(自性 · Cosmic Substance)를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키아 학파에 따르면 이러한 동일시가 있으면 우주와 현상이 전개되고("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있는 상태") 이러한 동일시가 사라지면 우주와 현상이 해체되어 사라진다("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상태"). 이러한 우주적 전개와 해체의 과정을 설명하는 삼키아 학파의 철학을 개별적인 영혼에 적용한 것이 요가 학파의 철학이다.
요가 학파에서는 요가 수행의 전제로 계율들, 즉 행하지 않아야 될 것들(① 야마)과 적극적으로 행하여야 할 것들(② 니야마)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 두 범주의 계율을 바탕으로 하는 상태에서 다음의 실천적인 수행을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한적하고 고요한 장소를 선택하여 좌정하되, 좌법(③ 아사나)에 쫓아 다리를 여미고 호흡(④ 프라나야마)을 가라앉게 하여 마음의 산란을 막아서, 5관(五官)을 제어(⑤ 프라챠하라)하여 5감(五感)의 유혹을 피하고, 다시 나아가 마음을 집중(⑥ 다라나와 ⑦ 디야나)시킨다. 그리하여 마침내 ⑧ 사마디(삼매 · 三昧 · 等持)에 도달한다.[19]
요가 학파에 따르면 사마디에도 천심(淺深)의 구별이 있어서 사비칼파 사마디(Savikalpa samādhi · 유상삼매 · 有想三昧)와 니르비칼파 사마디(Nirvikalpa samādhi · 무상삼매 · 無想三昧)로 나뉜다. 전자는 대상의 의식을 수반하는 사마디이며, 또한 아직은 대상에 속박되어 대상에 의해 제어되고 있고 또 심작용(心作用)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비자 사마디(Savija samādhi · 유종자삼매 · 有種子三昧)라고도 일컫는다. 그러나 니르비칼파 사마디에 들어가면 이미 대상의식(對象意識)을 수반하지 않고 대상에 속박되지 않으며, 그 경지에 있어서는 심작용(心作用)의 여력마저도 완전히 없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니르비자 사마디(Nirbija samādhi · 무종자삼매 · 無種子三昧)라고도 한다. 니르비칼파 사마디 또는 니르비자 사마디의 경지가 참된 요가이며 이 경지에서 푸루샤는 관조자로서 그 자체 속에 안주한다.
후대에는 이와 같이 ① 야마 · ② 니야마 · ③ 아사나 · ④ 프라나야마 · ⑤ 프라챠하라 · ⑥ 다라나 · ⑦ 디야나 · ⑧ 사마디의 여덟 단계로 구성된 라자 요가(Raja Yoga: 왕의 요가 또는 요가의 왕도) 대신에, 곡예와 같은 무리한 육체적 수행을 행하는 하타 요가의 실천도 성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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